이곳 마석에 성공회 교회의 선교 씨앗이 뿌려진 것은 1960년 2월 음성 나환자들을 위한 정착촌을 마련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이제 많이 완화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한센병, 즉 나환자들에 대한 인식은 맹목적인 두려움으로 쌓여 있었다. 따라서 음성 나환자들은 일정한 거처를 정할 수 없는 처지였고 이들의 유리걸식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다.
그런데 마석(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2리)에서 음성 나환자들의 정착촌을 만드는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1960년 2월24일, 영국인 선교사 테넌트(Roger Charles Tennant, 한국명:천갈로, 1919-2003.6.30) 신부가 당시 이북에서 월남한 음성 나환자 노창선을 비롯한 15명의 나환자들에게 기독교 세계봉사회(CWS)의 지원을 받으면서 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하였다
현지 마을 주민들과 상당한 갈등과 충돌 끝에 마침내 미국성공회가 발간하는 ‘Living Church’의 구독자들이 보낸 헌금 953파운드로 1962년 봄에 4만평의 대지를 구입하여 세 채의 가옥을 짓고 25명의 나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정착의 기반을 닦았다.
1964년에 성프란시스 성당을 건립하였고, 마석초등학교 녹촌분교도 설립
나환자의 가족은 40명으로 늘어났고, 10정보의 임야와 열두 동의 가옥을 건축하여 ‘성생원(聖生院)’은 1963년에는 25세대 80명에게 자립의 기반을 제공하는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1963년 가을부터는 성공회에서 월1회 정기적인 미사를 봉헌하였는데, 참여한 사람의 절반이 성공회 신자였고, 나머지는 장로교와 천주교 신자 등이었다.
교회는 농경지를 구매하고 주택 등을 건축한 다음 이 재산을 주민위원회 공동으로 소유하도록 하면서 자립의 기반을 닦아준 후, 더 이상 경제적 지원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 일부의 나환자들은 자신의 지분을 팔고 성생원을 떠나기도 했으나, 사실상 교회와 정부의 계속적인 지원 아래 농업과 축산업으로 자립마을을 형성해 왔다.
1964년 8월2일에는 25평 규모의 ‘성프린시스 성당’도 건립하였고, 그 후에는 마석초등학교 녹촌분교도 설립하였다. 성생원은 가톨릭교회가 설립한 ‘나자로 마을’과는 달리 주민자치 공동체를 이루는 기본정신 아래 독립적인 운영을 주민 스스로가 이어온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마석 일대에 가구공장이 들어서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성생원교회(현 남양주교회)는 특별히 1991년부터 지역 내 공장에 취업차 체류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외국인 (주로 필리핀, 말레시아인)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며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안식처 역할을 하였다.
1997년에는 120평의 샬롬의 집을 건축하였다.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전용공간으로 사무실, 쉼터, 교육실을 완공하고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선교를 시작하였다. 1994년 10월30일 새 성전을 축성하였다. 김성주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된 새 교회는 우리들에게 큰 희망을 만들어 주었다. 성생원 교회에서 남양주교회로 새롭게 태어나기도 한 날이기도 하다. 총 149평의 건물은 새 신자 증가를 가능케 했다. 교인수가 배가 되었고, 특별히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아시안 주일을 성수하고 난 이후로 성전은 동시에 외국인노동자들의 쉼터가 되었다.